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숀 켐프 (문단 편집) === [[시애틀 슈퍼소닉스]] === 루키 시즌 백업으로 나오며 NBA 적응 기간을 가진 켐프는 2년차인 1990-91 시즌부터 주전 파워포워드로 발탁, 신인 포인트가드 [[게리 페이튼]]과 함께 팀을 이끌어 나가며 활약했다. 그는 대학 무대에서 못 뛴 탓에 볼 핸들링과 파울 관리 측면에서 미숙하다고 지적됐으나, 무지막지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탄력 넘치는 덩크와 인사이드 장악력은 그를 리그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로 인해 94년부터 3년 연속 NBA 올 세컨드 팀[* 그 앞을 가로막은 NBA 퍼스트팀 포워드는 바로 [[칼 말론]]과 [[스카티 피펜]]이다.]으로 선발되었으며, 슈퍼소닉스 역시 서부의 강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조지 칼]] 감독 이하 [[게리 페이튼]], 데틀레프 슈렘프[* 독일 출생. 20대는 인디애나, 30대는 시애틀에서 전성기를 보낸 선수로 슈팅이 굉장히 정확한 SF. 1997년에는 서부 올스타에도 뽑혔다. [[디르크 노비츠키]]의 선구자적 인물이다.], 허시 호킨스, 숀 켐프, [[샘 퍼킨스]][* 3점 던지는 센터의 시초라고 보면 된다. 조던과 같은 해 데뷔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동문으로 조던보다 선배.], 네이트 맥밀란 등으로 이루어진 매우 탄탄한 라인업을 자랑하던 팀. 93-94 시즌 소닉스는 무려 63승 19패로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지만, 1라운드에서 8번 시드 [[덴버 너기츠]]에게 2연승 후 3연패로 업셋당하는 굴욕을 당한다. NBA 최초의 8번 시드 업셋이었다(…). 그래도 위상은 점차 높아져 94년 [[FIBA 농구 월드컵|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 [[드림팀]] 2에 뽑혔다. 드림팀 1 멤버들을 제외하고 젊은 선수들로 구성한 대회였는데 당시 켐프를 비롯하여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 [[래리 존슨]], 데릭 콜먼 등 20대 초중반으로 구성된 PF, C의 활약이 대단했다. 무엇보다 이 선수들 모두 코트에서 젊은 혈기와 분노(?)를 보인 대회이며 역대 드림팀 중 가장 뜨겁고 열정적인 모습을 펼쳤다.[* 물론 역대 넘버 1은 의심여지 없이 드림팀 1이지만 당시 20대 후반 30대 초반선수들로 이루어졌기에 에너지가 넘치는 혈기 왕성한 팀이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농구의 신 컨셉(특히 [[래리 버드]]. 금메달 따위는 관심도 없고 벤치 코트사이드에 계속 누워있다가 찔끔 플레이하고 다시 눕기. 그만큼 대회 자체가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었다.)이였고 94년 이후 구성된 그 어떤 드림팀도 당시 드림팀 2만큼 터프한 팀은 없었다.특히 2012년 대회부터 3점, 중장거리 비중이 대폭 증가했고 오닐, 모닝 같은 정통 센터의 부재도 한 몫 했다. 물론 [[드마커스 커즌스]]와 [[앤서니 데이비스]]의 존재는 어마무시 하지만 대표팀에서 활약 만큼은 아직까지 오닐, 모닝의 존재에 다가가지 못했다.][* 2004년 부터는 [[마누 지노빌리]], [[파우 가솔]]의 활약이 눈부셨다.] 95-96 시즌은 켐프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해였다. 평균 19.6득점 11.4리바운드 2.2어시스트, FG 56.1%로 시즌 스탯도 최상이었고 팀도 플레이오프에서 [[새크라멘토 킹스]], [[휴스턴 로키츠]], [[유타 재즈]]를 차례로 꺾고 NBA 파이널에 진출한다. 그러나 상대는 하필이면 그 시즌 72승을 찍은 [[시카고 불스]](…). 켐프는 파이널 6경기에서 평균 23.3득점 / 10리바운드 / 2블록으로 미친듯이 활약했으나 2승 4패로 시카고 불스를 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소닉스는 72승의 시카고 불스 상대로 정규시즌 1승을 포함, 가장 많은 3승을 따낸 팀이 되었다. 켐프의 활약은 수치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임팩트가 대단했다. 90년대 중반은 기본적으로 로우페이스-저득점 트렌드가 시작되던 시점이었음은 물론이고, 시카고 불스는 이 해 상대실점이 리그 최소(페이스 감안한 디펜스 레이팅 1위/2위는 시애틀)에 빛나는 최강수비팀이었고 불스의 파워포워드는 올디펜스 퍼스트팀에 오른 [[데니스 로드맨]]이었는데도 저런 활약을 펼친 것이다. 게다가 켐프의 이 시리즈 게임스코어[* Gamescore. 한 선수의 종합적인 공헌도를 알아내기 위해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턴오버 등을 수치화해 낸 종합 점수.]는 18.9로, 파이널 MVP이자 우승팀 불스의 압도적 게임스코어 1위였던 [[마이클 조던]]의 18.5보다 높았다. 근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조던은 이 시리즈를 제외하곤 그가 참가한 '''모든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양팀 통틀어 가장 높은 게임스코어를 기록했었다. 이기건 지건 그가 뛴 모든 시리즈에서 그는 게임스코어상으로 최고의 선수였는데, 유일하게 (근소하게나마) 밀린게 바로 이 시리즈의 켐프였던 것. 이 시리즈에서 조던을 온몸으로 막은 [[게리 페이튼]]의 수비도 대단했지만 그만큼 켐프의 활약도 대단했다. 비록 지긴 했지만 소닉스의 최강 듀오가 그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게 바로 96년 파이널이었다. 소닉스의 프랜차이즈로 남을 것 같았던 켐프였지만 96-97 시즌이 끝나고 소닉스를 떠나게 되었다. 계약 문제로 인한 팀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는데, 소닉스가 빅맨 보강을 위해 워싱턴 블리츠에서 [[게오르그 뮤레산]]의 백업으로 뛰던 수비형 센터 짐 맥길베인에게 거액의 돈을 안겨주는 계약을 하면서 갈등이 수면 위에 올랐다. 켐프는 자신의 팀 기여도에 비해 낮은 연봉에 불만을 토했고 트레이닝 캠프를 무단 이탈하는 등 결국 팀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결국 시즌 종료 후 팀은 밀워키 벅스 및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간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클블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된 뒤 클블과 7년간 1억7백만달러의 계약을 맺으며 고액 연봉자의 반열에 올랐다. 한편 소닉스는 캠프를 보낸 댓가로 [[밀워키 벅스]]로부터 동 포지션의 올스타 플레이어인 [[빈 베이커]]를 영입해 리그 최고 수준의 강팀으로서의 위용을 유지했으나, 켐프 이상으로 몸관리가 안되던 베이커가 2000 시즌을 기점으로 완전히 망가지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 켐프가 이적한 첫 해에는 61승을 거두는 등 오히려 그의 마지막 시즌(57승)에 비해 성적이 올랐다. 위에 서술되어 있듯이 소닉스 몰락의 계기는 사실 베이커의 기량 저하 때문이었다. 베이커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다재다능한 포워드였으나 연습 도중에 술냄새가 날 정도로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다. 그는 직장폐쇄로 단축시즌이던 99시즌을 기점으로 평균 득점이 5점 넘게 폭락했으며 (이때 부상으로 50경기 중 34경기에만 나왔다.), 그 다음 시즌에는 전성기 211cm, 105kg의 슬림한 몸이 135kg 전후까지 불어버렸다. 결국 몸무게는 112kg 전후까지 줄이는데 성공했으나 사라진 기량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널뛰는 경기력을 보이다 02시즌 이후 팀을 떠나게 된다. 이후 소닉스는 2003시즌 중반에 팀의 오랜 에이스이자 상징이었던 [[게리 페이튼]]까지 떠나보내면서 기존의 조지 칼 체제의 마지막 흔적까지 없애게 된다.] 7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팀은 이후 11년간 단 4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그치며 2008년 연고지를 옮겨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재창단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